이 글은 대기업 AI 트랜스포메이션(AX)을 실무단에서 직접 겪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한 사견입니다. 그 점을 이해하고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보고서를 1시간에 끝내는데, 왜 일주일 뒤에 제출할까요?
저는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도, 개인 역량 강화를 위한 개인 프로젝트에서도 AI를 계속 써오면서 정말 많은 효율과 생산성 향상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AI에 대한 열망과 부푼 기대를 안고 있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정말 많은 종류의 AI 서비스를 다 써봤고, 거기서 얻은 인사이트를 기반으로 API를 활용해 직접 여러 가지를 만들어보기도 했습니다.
저는 규모가 꽤 큰 마케팅 회사에서 다양한 문서를 자주 쓰는 사람입니다. 수많은 동료와 이해관계자, 클라이언트를 상대로 프로젝트 보고서, 계획안, 리서치 조사 보고서, 마케팅 제안서를 만듭니다. 그런데 저는 자주 쓰는 각종 서류 폼을 Claude에서 스킬화했고, 지금은 이런 문서 작업을 깔끔하고 신속하게, 높은 퀄리티로 소화하고 있습니다.

물론 보고서나 제안서는 다시 한번 손수 수정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회사 조직 격식에 맞는 윤문이나 레이아웃 재구성 수준입니다. 저는 프롬프트를 굉장히 꼼꼼하고 치밀하게 가이드화했고, 조직에 맞는 문서 포맷에 맞춰 리드 문장과 상세 내용별 폰트 크기까지 타이트하게 맞춰놓았기 때문에, 바로 쓸 수 있는 수준의 결과물이 나옵니다.
리서치 보고서는 제가 10퍼센트 정도의 노력만 더하면, 윗분들도 놀라는 컨설턴트 수준의 보고서가 하루 만에 나옵니다. 그 10퍼센트는 AI가 찾지 못한 연관 기사나 정보 링크, 제가 따로 만든 조사 내용을 추가로 얹어서 AI의 정보 수집 사각지대를 보완하는 일입니다. 사람과 AI가 협업하는 방식이죠.
저는 PPT만 20년 만진 사람입니다. 솔직히 큰 회사일수록 PPT 보고서는 딱 정해져 있습니다. 화려하지 않게, 정형적인 도식과 구조로 보고하면 됩니다. 그래서 오히려 워드와 PPT 양식을 AI에 제대로 학습시키고 마크다운 가이드로 지침을 심어두면 문서 작업 시간이 현저히 줄어듭니다. 옛날에는 내용보다 도식과 레이아웃, 도형 디자인 같은 데에 시간을 많이 썼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웬만한 보고서 업무는 1시간이 안 되어 끝냅니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1시간 만에 제출하지 않습니다. 일주일 뒤에 냅니다. 그래도 잘했다고 놀라워합니다. 왜 바로 끝낼 수 있는 일을 지연할까요? 제 심보가 못되어서일까요? 여기서부터가 오늘 이야기의 본론입니다.
왜 일 잘하는 사람에게 일이 몰릴까요?
제가 오늘 다루고 싶은 주제는 AX, 즉 AI 트랜스포메이션입니다. 특히 대규모 기업의 AX가 왜 어려운지, 제 개인 생각으로는 왜 실현 가능성이 거의 0에 가까운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회사 조직에서 한 개인이 일을 잘하고 신속하게 해결하는 모습을 자주 보이는 순간, 그 사람에게 많은 일이 몰립니다. “저 사람한테 주니 어떻게든 잘하네, 금방 끝나네, 이것도 주고 저것도 주자”가 되는 것이죠. 팀 조직이 많은 대기업일수록 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많은 기업이 비상입니다. AI가 엄청나게 고도화된 것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보안이라는 명분 아래 AI를 금지하는 쇄국주의를 해오다가, 경쟁력이 밀리자 위기의식을 느끼고 국내 탑 대기업들이 앞다투어 기존 직원들에게 AI 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교육을 해도 직원마다 소화력이 다르고 퍼포먼스도 제각각입니다. 인풋이 같다고 아웃풋이 같을까요? 당연히 다릅니다.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AI 열정러와 AI 피곤러는 어떻게 갈라질까요?
여기 두 타입의 직원이 있습니다.
| 구분 | AI 열정러 | AI 피곤러 |
|---|---|---|
| 태도 | 기술에 매료되어 자발적으로 학습 | 바빠 죽겠는데 무슨 AI냐 |
| 투자 | 사비로 공부하고 테스트하고 실패도 경험 | 회사 의무 교육만 수강 |
| 결과 | 남보다 많은 AI 실전 경험 축적 | 채팅 몇 번에 실망하고 이탈 |
AI 열정러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퇴근 후에 밥도 잊고 AI를 공부하고, 새로운 테스트를 시도하고, 망쳐도 보고, 무언가 결과물을 만들어갑니다. AI 피곤러는 의무 교육을 듣고 거기서 멈춥니다. 남이 하는 수업만 들어서는 AI를 잘할 수 없는데도 말이죠. 채팅 몇 번으로 결과물이 제대로 안 나오면 “AI가 할루시네이션이 심하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며 제대로 된 성능을 경험해보지도 못하고 끝냅니다.
회사는 똑같은 인풋을 주며 AI 중심으로 생산성을 높이려 하지만, AI 관련 업무와 특별 과제는 본업은 본업대로 두고 추가 과제로 주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유의미한 결과물은 높은 확률로 일 잘하는 AI 열정러에게서 나오기에, 그런 이들에게 계속 일이 몰립니다. “너 AI를 꽤 하는 것 같으니 우리 부서 AI 전문 담당은 일단 네가 도맡아서 해.” 직장인이라면 익숙한 풍경이죠.
더군다나 납품해야 하는 결과물이나 중요 제안서, 중요 보고서라면 관리자는 AI 초보에게 맡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일은 항상 ASAP, 가능한 한 빨리라는 전제가 붙어 내려옵니다. 파레토의 법칙처럼 소수에게 일이 몰리는 현상은 AX 과제에서도 똑같이 반복됩니다.
도메인 지식만 있으면 AX를 이끌 수 있을까요?
AI 열정러가 AI를 아무리 잘 써도 시간이 들고 신경 쓸 일은 여전히 많습니다. AI에게 업무 과제를 어떻게 지침으로 줄지, 어떻게 프롬프트를 쓸지, 어떻게 가이드화할지. 이 고민이 AI 과업의 최초 시작이고 거의 모든 일의 절반입니다.
제 경험상 간단해 보이는 프롬프트 하나도 숙련된 경험과 인사이트가 있어야 제대로 된 결과물을 받는 지시문이 됩니다. 그리고 인사이트가 담긴 대화를 이어갈수록 AI도 맥락을 정확히 파악한 결과물로 계속 업데이트해줍니다. 회사가 아무리 교육을 해도 이 능력은 아무나 갖출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선천적으로 일머리를 갖고 있는 직원이 원래 있듯이, AI 역량이 뛰어난 사람도 그런 느낌입니다. 그들의 프롬프트 속에는 몇 수 앞을 내다보고 두는 바둑알처럼 다양한 경우의 수를 심사숙고한 설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도메인 지식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직무를 A부터 Z까지 다 아는 사람이 결국 AI 트랜스포메이션을 이끈다는 것인데, 저는 반은 맞고 반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숙련된 지식과 경험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지식과 경험을 AI에게 어떻게 과제로 설명하고 어떤 결과물로 뽑아내도록 이끌 것인가를 기획하는 능력입니다.
특히 소통이 중요합니다. 조직 내 소통 프로세스를 잘 이해하고, 그 흐름 가운데 AI의 역량을 적소에 위치시키는 일이 결국 조직 내 최선의 AI 트랜스포메이션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직에서는 한 개인이 도메인 지식을 혼자 다 알고 있다고 AX를 이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획 부서와 협업하고 조율해야 하고, 결정 권한이 있는 재무 부서, 디자인 부서, 개발 부서 등 이해관계가 다른 여러 부서가 있기에 혼자만의 플레이로는 AX를 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바이브 코딩으로 타팀 툴을 만들며 무엇을 배웠을까요?
AI를 잘하려면 테스트를 많이 해야 하고 결과물 검수와 피드백을 꼼꼼히 해야 합니다. 단순한 보고서 포맷도 한 번에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바이브 코딩도 한 번의 프롬프트와 요구 기능 정의서로 기대한 솔루션이 나오지 않습니다. 수많은 오류를 잡아내고, 다양한 경우의 수를 생각해 테스트하고, 그 결과를 꼼꼼히 AI에게 피드백 주고 개선하고 다시 테스트하는 것을 반복해야 이른바 하네스 엔지니어링이라고 하는 AI 역량을 갖추게 됩니다.
이 테스트는 혼자 해도 되는 경우도 있지만,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테스트하고 그들의 필요를 파악하고 다른 이해관계자의 업무 방식을 이해하며 개선해야 하는 경우가 오히려 많습니다.
단적인 예로, 저는 최근 회사에서 다른 팀 조직원들이 쓰는 마케팅 툴을 바이브 코딩으로 솔루션화한 적이 있습니다. 결과물을 마음에 드는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 해당 팀 조직원들이 계속 테스트하고 피드백을 주고 개선하기를 반복했고, 결국 그들이 실제 업무에 유용하게 쓸 수 있는 툴이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저는 제 AI 역량을 믿는 편인데도 “이 정도면 그만해도 되는데”, “이 기능은 왜 넣으라는 거지” 같은 자의적 판단이 들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반대로 다른 팀 조직원들은 개발 배경이 없는 기획자라서 “GEO 버튼을 넣어주세요”라고 요청하면서도 그 이상의 정보나 기능 정의는 못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개발자가 아닌 분들의 특징이죠.
저는 개발 프로젝트를 많이 매니징해본 기획자이기에 그 빠진 부분들을 경험과 AI와의 협업 대화로 채워나갔습니다. GEO 버튼이 AI 검색 최적화라는 뜻인 것은 알겠는데, 그 버튼을 누르면 어떤 기준으로 어떤 정보와 기능이 작동되길 원하는 것인지 고민하면서, 채워지지 않는 영역을 인사이트 기반으로 개념 정의하고 추가 기능 요소를 정의해 개발을 지시했습니다. 상대 기획자에게 물어본들 구체적 가이드가 올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기에, 역으로 바이브 코딩 최고의 장점인 빠른 목업으로 실물을 보여주며 “이거 맞죠?” 방식으로 접근했고, 그것이 좋은 결과물의 비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왜 AX 업무는 끝나지 않을까요?
그런데 이런 일을 하나둘 처리하다 보니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여기저기서 “이것도 만들어주세요”, “이건 이렇게 수정해주세요”, “이건 잘 되었으니 이번에는 이것을” 하는 요청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들 각자의 목표가 있고 이참에 효율을 개선하고자 하는 욕심이 생긴 것이죠.
문제는 일이 몰리는 것만이 아니라, 일을 쉽게 종료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AX 과제의 최종 목표가 나 혼자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내는 것이었다면 금방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각 부서 구성원과 실제 업무 담당자, 이해관계자가 이전보다 효율이 나는 것이 골이기에, 나의 만족이 아니라 이해관계자와 타부서의 만족이 결과입니다. 그렇기에 회사에서의 AX 업무는 끝내고 싶어도 내 마음대로 적당히 끝내기 어렵습니다. 상대가 좋다고 해야 끝나는데, 상대는 적당히 끝내줄 입장이 아닙니다.

이 상황은 조직마다 형태가 다를 것입니다. 단순히 사내 정치 알력 다툼의 전장일 수도 있습니다. AI 프로젝트라는 명분 좋은 일에 대한 위기감과 질투심이 자리 잡아 “AI로 대체 불가능”이라는 결론을 내고 싶어서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그들도 AI 효율화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해 협업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입장에서 “이거 만족”이라고 말하는 순간 본인들의 책임이 됩니다. 나중에 “이게 아닌데”라는 상황이 생기면 꼼꼼히 검토하지 못한 사람의 귀책이 될 수 있고, 향후 보안 사고 같은 이슈라도 나면 더욱 아찔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누구도 쉽게 만족을 선언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AX 임무를 수행하는 저 자신의 만족도도 점점 떨어졌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대우가 격하되기 시작했습니다. 데드라인과 일정에 상관없이 수정 요청이 이어지고, 저는 어느덧 컨펌받는 입장이 되어 숙제를 다 하고 검사를 기다리는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불현듯 속담 하나가 스쳐 지나갔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다.
그래서 저는 어떤 결론을 내렸을까요?
결국 저는 “회사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적당히 AI를 하자”로 결론을 내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제 AI 역량을 전부 보여주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다 보여주고 더 빠르게 해봤자, 조직의 일이라는 것은 끝나지 않는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기에 오히려 AI 열정러가 다 타버려 재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험을 숱하게 겪어본 이들은 알아서 적당히의 마인드를 가지고, 몰래 자신의 자산을 준비하고 있을 것입니다. 창업이라든가 이직 같은 것 말이죠.
소수의 AI 열정러에게 일이 몰리고 필연적으로 피로감이 쌓이면, AI 트랜스포메이션을 위해 투자했던 결과물은 경제 효과처럼 양극화됩니다. 어떤 열정러는 복합적인 AI 툴로 즉시 결과를 만들어내는 역량을 갖게 되고, 어떤 피곤러는 여전히 그것은 내 일이 아니라며 예전 방식으로 일하는 데 집중하느라 바쁘다며 AI를 멀리합니다. 그리고 일은 한 방향으로 몰려, 결국 한 개인 수준의 범위에서 전사 AI 트랜스포메이션이라는 거대한 과업을 수행하는 그림이 되어버립니다.
제 결론에는 과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른 환경에 계신 분들에게는 수긍이 안 가거나 다른 시각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제가 오너였고 제 사업 영역을 모두 AI 트랜스포메이션하는 입장이라면 결론은 다를 것입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재직 중인 회사의 직장인 근로자 관점에서, 나름 AI 열정러이자 성실한 근속 연수 긴 시니어급 직원 입장에서의 생각을 말씀드렸습니다. 오너이신 분들은 입장이 다름을 다시 한번 리마인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조직은 어떤가요? AI 열정러에게 일이 몰리는 구조를 겪고 계신가요, 아니면 다른 해법을 찾으셨나요?